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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미치지 않는 것이 저주스러울 만큼의 고통, 아들을 잃었으나 시간이 지나면 잊게 될까 봐 무서워하는 어머니의 고통만큼 아픈 것이 있으랴.
단톡을 통해 알게 된 대구가톨릭평화방송 이상재 가스톨 신부님의 영상은 가슴속을 후벼 파는 아프고 아픈 인간의 삶 속 이야기였다. 다시 한번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영상 속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북극에 북극곰이 있다면 남극엔 펭귄이 있습니다. 펭귄들의 고향 남극은 북극보다 더 추운 영하 40도에 사람도 넘어뜨리는 블리자드라는 초속 30미터의 눈 폭풍이 불면 화이트 아웃 현상으로 어디가 땅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빼곡한 털과 두터운 지방층을 가진 펭귄도 살아남기 힘듭니다. 북극곰이 겨울을 이기는 방법은 겨울잠이고 펭귄이 남극의 겨울을 이겨내는 방법은 함께 모여 서로를 끌어안는 허들링(Huddling) 작전입니다.
원형으로 모여 서로를 안아주며 체온을 유지합니다. 강강수월래 모양처럼 회전원을 그리며 안에 있던 펭균이 조금씩 밖으로 나가고 밖의 평균이 안으로 조금씩 들어옵니다. 그렇게 하여 남극의 모진 겨울을 이겨냅니다.
남극만 살기 힘들까요?
우리네 인생살이 발걸음 딛는 곳곳이 남극처럼 춥고 어둡습니다. 아침 뉴스마다 사건 사고 소식이 들려옵니다. 늙고 병들고 싸우고 죽은 이야기에 아침 시간이 바쁩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 시인의 말은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여전히 외롭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그리움과 외로움은 짝꿍처럼 붙어 있습니다.
일본에 어느 노인은 시골 생활 중에 너무 외로워 전등을 끄고 촛불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방 안 가득 찬 전등 불빛이 작은 촛불로 바뀌니 촛불의 크기만큼으로 외로움이 줄어들더라나요.
니힐 노붐 숩 솔레(Nihil novum sub sole-nothing is new under the sun). 태양 아래 새로운 일이 없듯 다들 비슷하게 삽니다.
너나없이 다들 불안하고 외롭고 아프고 속상하고 남극의 블리자드 눈보라 화이트 아웃 현상처럼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는 상황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까요?
펭귄의 허들링 작전 안아주기 작전이 필요합니다. 유유상종 같은 사람끼리 모이는 겁니다.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가련히 여기는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서로를 안아주어야 합니다. 혼자 있는 아담을 위해 함께 있을 하와를 마련해 주신 창조주이십니다. 함께 모이는 것은 창조와 생명의 원칙입니다.
마이너스 곱하기 마이너스는 플러스가 되듯 나의 추위와 너의 추위가 만나면 온기가 생겨납니다. 너의 상처와 나의 상처가 만나면 치유가 일어납니다. 너의 외로움과 나의 외로움이 만나면 우리라는 공간이 생깁니다. 걱정이 작아지고 얼었던 마음에 봄 아지랑이 피어오릅니다.
2011년 우리 곁을 떠난 소설가 박완서 님은 1988년 5월에 남편과 사별하고 8월에는 26살 아들을 잃었습니다.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일하던 외아들이었습니다.
딸을 넷 낳고 어렵사리 얻은 아들. 걱정 안 시키고 기쁨만을 준 아들이 죽자, 그녀는 절망했습니다. 참담한 심정으로 모든 문예 활동을 끊었습니다. 아니 아예 삶 자체를 끊고 싶었습니다. 물도 음식도 숨 쉬는 것 자체가 싫었습니다. 스스로 미치지 않는 것이 저주스러웠습니다.
아들을 잃은 어미로서의 본능적이고도 맹렬한 슬픔만이 그녀를 지배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사람들은 이런 위로를 전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잊게 돼.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더냐 싶게 또 웃고 살게 돼.
그러자 박완서는 절규했습니다. 나는 나는 그게 무섭단 말이야. 생때같은 아들을 잊어버린다는 게 그게 무섭단 말이야. 두문불출 애통 절통. 세상에 스스로를 폐쇄시키고 슬픔에 잠겨 있던 그녀에게 누군가 원주에 계신 박경리 선생님 댁에 가시지 않겠어요? 하고 권했습니다.
의외로 순순히 따라 나서서 원주에 도착한 그녀에게 밭을 매고 있던 박경리 선생은 흙발로 뛰어나와 마루에 앉히고는 급히 따스한 밥을 짓고 배추속대 국을 끓여 그녀에게 권했습니다. 고개를 돌리며 음식을 거부하는 박완서에게 박경리 선생은 우격다짐으로 음식을 퍼 먹였습니다.
먹어라. 먹어야 살고 살아야 글을 쓰고 글을 써야 치유가 된다. 네가 살고 네 글을 읽은, 아들 잃은 이 땅에 많은 어미들이 산다. 아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마라. 어서 먹어.
6.25 전쟁 중에 남편과 국민 학생 아들마저 잃었던 박경리 선생을 잘 알고 있는 박완서 씨는 이심전심으로 눈물을 흘리며 밥술을 입으로 받아먹습니다. 눈물은 줄줄 아래로 흐르는데 자꾸만 위로 올라오는 숟가락을 입으로 받으며 눈물과 콧물과 국물이 한 데 섞여 목구멍으로 넘어가며 박완서와 박경리 두 여인의 남편과 아들 잃은 어미로서의 아픔은 공유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다섯 살 연상인 박경리 선생은 박완서 그녀에게 친정 엄마가 되었습니다.
박경리 선생의 장례식 때 의붓 딸 박완서 그녀의 송별인사입니다. 죽을 만큼 힘들었을 때 눈물범벅으로 따순 밥과 배추속대 국을 아귀아귀 퍼먹여주신 당신은 저의 친정어머니였습니다.
어떠한 위로도 마다하던 박완서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었던 것은 박경리 선생의 상처였습니다. 배추속대국을 먹도록 입을 열게 한 것은 박경리 선생의 멋진 말이 아니라 박경리 선생의 남편과 아들 잃은 상처였습니다. 그리하여 두 여인의 상처는 마침내 그녀들의 작품을 통해 상처 입은 많은 어미들을 보듬는 최고의 위로제, 치료제, 항생제가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물 폭탄으로 외로움과 불안함으로 힘드시지요?
나의 힘겨움과 부족함은 함께 살아가는 상처 입은 이웃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입니다. 김창옥 스피치 강사는 제주공항에서 돌아서는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짠한 마음과 함께 비로소 아버지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당신의 힘든 인생은 헛되지 않습니다.
당신의 힘겨움은 가족의 마음을 사고 이웃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치료제가 됩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세상의 항생제 아스피린이 되어 가는 인생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기운 내십시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드라마 다모의 명대사, 아프냐 나도 아프다는 드라마에만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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